마음공부/법정

여기 바로 이자리

kooangelo 2023. 3. 14. 15:59

말보다는 침묵이 더욱 귀하게 여겨질 때 입다물고 침잠하고 싶어집니다.
말이 의사표시의 하나이듯이 침묵도 또한 의사표시의 한 방법입니다.
말과 침묵의 상관관계 안에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은, 삶의 내밀한 오솔길이기도 합니다.
15세기 인도의 영적인 시인 까비르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벗이여, 어디 가서 '나'를 찾는가
나는 그대 곁에 있다
내 어깨가 그대의 어깨에 기대어 있다
절이나 교회에서 나를 찾으려 하지 말라
그런 곳에 나는 없다
인도의 성스러운 불탑들 속에도
회교의 찬란한 사원에도
나는 없다
어떠한 종교의식 속에서도
나를 찾아낼 수 없으리라
다리를 꼬고 앉아 요가수행을 할지라도
채식주의를 엄격히 지킨다 할지라도
그대는 나를 찾아내지 못하리라
그대가 진정으로 나를 찾고자 한다면
지금 이 순간을 놓지지 말라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나를 만날 수 있으리라
벗이여, 나에게 말해 다고
무엇이 신인가를
신은 숨 속의 숨이니라

우리가 믿는 종교나 신앙이 절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당이나 교회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부처님이나 하느님이 법당이나 교회에 있나요?
법당이나 교회에 있는 것은 불상이건 십자가이건 그것은 한낱 형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 법당이 절에만 있나요?
부처님이 계시고 법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나 법당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절이나 교회를 찾아가는 것은 그런곳에서 그 길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이 참이고 거짓인지를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교회와 절은 다분히 상업주의에 오염되어 본래의 기능을 읽어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믿습니까? 부처님? 신? 하느님?
이것은 또 얼마나 관념적이고 개념화된 이름입니까.
이런 메마른 관념과 개념에 얽매여, 살아 있는 참 부처님과 신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관념화 되고 개념화된 '머리의 종교'는 공허한 이론에 지나지 않습니다.
삶이 약동하는 '가슴의 종교'만이 우리들의 영혼을 구제할 수 있습니다.

그럼 부처님과 신은 어디에 존재하나요?
마음 밖에서 찾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마음 밖에 있는 것은 모두가 허상입니다.
분명히 새겨두십시오. 불교는 부처님을 믿는 종교가 아닙니다.
인과관계를 비롯한 우주질서와 존재의 실상을 철저히 인식하고 본래의 자아에 눈떠 온전한 사람이 되는 길입니다.
온전한 사람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을 알아야합니다.
자기 자신을 알고자 한다면 스스로를 면밀히 지켜보십시오.
자신의 생각과 말씨, 혹은 걸음걸이와 먹는 태도, 운전습관, 그리고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그 마음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마음의 움직임을 살피는 이 과정에서 순간순간 삶의 실체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안으로 살피고 지켜보는 일이 없다면 우리들의 마음은 거친 황무지가 되고 말 것입니다.

버리고 떠나기, 법정스님 - p195 ~ 197 여기 바로 이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