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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경험

kooangelo 2024. 7. 16. 16:48

한편으로는 KAIST에서 필자는 우리 사회에서 사교육으로 잘 훈련된 학생들을 만나고 있지만
학년이 올라가고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사회에 진출할 때는 사교육으로 다져진 것들이 점점 용 잡는 방법들과 같은 모래성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는 마라톤 출발선에서 제일 먼저 빠르게 뛰어나가는 행동이 최종 승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오히려 페이스를 망가뜨려 완주를 못하게 하는 상황과 유사하다.

미국 실리콘밸리 애플 연구소에 있는 A박사는 필자가 우리 교육과 관련해 자주 언급하는 제자 중 하나이다.
오래전 필자의 연구실이 나름 인기가 있어 매년 많은 학생들이 지원했는데 그 가운데에서 1~2명을 대학원생으로 선택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함께 지원한 학생 중에는 영재고를 졸업하고 KAIST에서 높은 학점과 스펙을 내세우는 경우도 있었지만 필자가 A군을 선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시골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A군은 지방의 B대학에 입학했는데, 군 복무를 마친 후 뒤늦게 공부에 전념해 우수한 성적으로 B대학을 졸업하고 KAIST 대학원에 입학한 경우였다. 특히, 중학교 시절 학교 당구 선수로 평균 점수가 400이었다는 대목은 필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만 하고 어려운 문제만 풀었을 다른 학생들과 비교해 A군은 나름 '제대로' 교육을 받았고
'실컷 놀았을 것 같다'는 기대가 있었다. 대학원에 진학한 A군은 필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열심히 연구를 해 필자의 첫 <네이처> 논문 1저자가 되었고 KAIST 박사 후에는 칼텍에서 포스트닥을 한 후에 애플 연구소에 들어갔다. 더불어 필자가 A군이 제대로 교육을 받았다고 언급한 것은 역설적으로 A군이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에 뜻이 없어 스트레스없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다양한 경험을 했을 것 같아서다. 하나의 사례를 일반화한다는 반론에 대해서 필자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런 사례가 필자의 오랜 교육 경험에서 결코 적지 않다는 점이다.

대학 입시가 인생의 목표인 학생들은 중고등학교 시절 사회에 나가서 크게 써먹을 데 없는 내용들을 어렵게 풀고 암기하면서 귀중한 시간을 보낸다. 혹 대학에서는 유용하게 써먹을 것이란 기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교수인 필자는 "아니다"고 분명히 말한다. 더구나 즐거워야 할 배움의 중고등학교 시절이 인고과 고통의 시간이었던 학생들은 대학에 들어오면 목표를 상실하거나 처음 주어진 해방감에 방황하는 경우도 일상이다.

 - 교육이 없는 나라, 이승섭 p84~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