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틀에 걸쳐 두명의 외국 손님을 맞았다.
만나기 전부터 그들의 이름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내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차이가 있다면 한 사람은 직접 얼굴을 맞대고 시간을 나누었지만,
다른 한 사람은 신문과 방송을 통해 일방적으로 만났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다른 듯 같은 종류의 감동을 주었고,
그 여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한 분은 건축가 페터 춤토르이고, 다른 한 분은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교황의 한국 방문은 우리 사회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그는 세월호 유족을 비롯해 쌍용차 해고 노동자, 위안부 피해자, 장애우, 새터민 등을 만났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슬프고 힘없는 약자들이었다.
그들의 안타깝고 절실한 형편을 개선하는 데 딱히 교황이 해 준것은 없다.
단지 그들의 아픔을 들어주고, 기억하겠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소박한 행위가 당사자들에게는 너무나 큰 위로가 됐고,
온갖 참사로 만신창이가 된 국민에게는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됐다.
같은 시기에 한국을 방문한 춤토르는 세계 건축계가 가장 존경하고 주목하는 현역 대가다.
... 춤토르는 여러 가지 면에서 예외적이고 독특하다.
일흔을 넘긴 이 대가는 스위스 산골 출신으로 아직도 고국의 산골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설계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세계적 명성과 연륜에 비해 그가 설계하고 완공한 건물들은 열 손가작에 꼽을 정도로 희소하다.
작품들은 대부분 스위스에 산재하며, 외국이라고 해야 인접국인 독일에 세운 한두 점 정도다.
지방 도시의 미술관이나 시골 교회이니 규모도 크지 않다.
작품의 수나 규모, 활동 지역으로만 본다면 영락없는 지역 건축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들은 모두 세계적 명작 반열에 올라 현대 건축의 순례지가 됐다.
... 그가 말하는 좋은 건축이란 인간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다.
거대하고 화려한 건축은 인간을 소외시키지만, 춤토르의 작은 건축들은 감동을 통해 인간을 치유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류 사회의 낮은 곳을 쳐다보고 빈자와 약자들을 위로한다.
그 위로는 개인의, 세계의 영혼을 치유한다.
보석은 작기 때문에 빛을 발하고, 물은 낮은 곳에 머물기에 생명을 준다.
춤토르의 작고 아름다운 건축이 혼돈의 도시와 환경을 밝히는 빛이라면,
교황의 낮은 곳을 향한 고귀한 위로는 탐욕으로 황폐한 영혼을 치유하는 생명수다.
한줄기의 아름다운 빛과 한 모금의 고귀한 생명수를 만난 이틀이었다.
- 김봉렬, 김봉렬 칼럼, 한국일보, 2014년 8월 19일 자.
- 남양성모성지이야기, 이상각 p39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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