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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델러다

제 일이 아닌데요

by kooangelo 2025. 1. 14.

어느 조직이나 R&R이 문제가 될 때가 있다. 아니 많다. 사실 R&R만 잘 정리되어도 일의 절반은 끝나는 느낌이다. 그 만큼 어려운 문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R&R 정리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우리 팀 일’, ‘다른 팀 일’ 그리고 ‘나의 일’, ‘너의 일’ 구분이 어려운 교집합 영역, Gray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도 맡기 싫어하는 일, 어려운 일, 귀찮은 일 등에 대해서도 누군가는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프로젝트에서도 R&R은 중요하다. 그래서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제일 먼저 협의하고 정의해야하는 일이 R&R이다. 회사별(발주사, 수행사, 협력업체), 팀별, 파트별, 개인별, 역할별, 프로젝트 규모가 작다면 각 리더끼리 잘 공유되고 협의되면 되겠지만, 프로젝트 규모가 크다면 명문화하고 그 문서는 필요한 경우 계속 업데이트, 공지되어야 한다.


프로젝트의 R&R 중 각 고유의 업무는 그럭저럭 정의되지만 제일 문제가 되는 부분이 바로 ‘공통’ 이다. 말이 공통이지 각 업무팀 개개인의 일이 아니라고 하는 순간 공통으로 떨어지게 될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 공통의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그렇다 보니 생각하는 사람마다 차이가 크고 그래서 분쟁이 많다. 각 업무별 공통, 전체 공통, 공통 기능, 공통 화면, 표준, 가이드 등등. 그렇다 보니 공통파트를 담당하는 PL이 쉽지 않고, 능동적으로 일하기 어렵다. 잘 해야 본전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누가 선뜻 맡아서 하겠다고 하지 않는 자리 중 하나가 공통PL이다.


그렇다 보니 업무회의 중 각자 파트의 일이 아니라고 하는 경우 공통PL을 쳐다보면서 검토를 부탁한다는 등, 여러 요청이 있어 피곤한 자리이다. 그렇다 보니 공통파트도 공통PL도 자기 방어하기 바쁘다. 이렇게 저렇게 다 받아들이다 가는 현재 받아둔 자기 일도 다 못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네마네’, ‘받네마네’, ‘옥식각신’하고 결국 응용총괄이나 PM까지 관여하여 조정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그러한 역할이 공통PL인데 예전 어떤 프로젝트에서 어떤 부장님 그 공통PL역할을 맡으셨는데 어느 날 회의 중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주인 없는 일은 모두 저에게 주세요”. 나는 그 분의 이 말을 들은 이후로 그 분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 이 업계에 보기 드문 인물임을 느꼈다. 주인 없는 일을 받아 많이 힘들었을지, 다 못하게 되었을지, 그 이후에는 보지 못했지만 모두들 자기 일이 아니라고 쳐내기 바쁜 그러한 일정과 상황속에서 저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와 내공이면 무슨 일이든 잘 해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내가 겪은 일이다. 프로젝트에서 SWA 또는 모델러로 투입되어 내 나름대로 고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은 관리자가 오더니 나에게 이렇게 지시하는 것이었다. “파일서버를 관리해줬으면 좋겠는데”. 처음 드는 생각 ‘내가?’ ‘왜?’ ‘이런 일을 나에게 시키는 저 사람이 좀 이상한데’ ‘저건 사업관리팀에서 할 일인데’ 등등 당연히 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급이 깡패인지 어찌어찌 억지로 내가 맡아 관리하게 되었다. SWA 또는 모델러와 업무 연관성 1도 없을 것 같은 프로젝트의 파일서버 관리를 억지로라도 하다 보니 나중에 공통업무의 권한관리 등을 모델링할 때 큰 도움이 되었고 윈도우 서버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 향후 윈도우 서버 관리에도 큰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제 일이 아닌데요’하면서 당장은 받고 싶지 않은 일을 회피했다고 좋을지 모르겠지만, 당장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지만, 미래에 언젠가는 어떤 형태로든 나에게 또는 주변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누군가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했다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