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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공지영

하느님은 나를 기다려 주신다

by kooangelo 2024. 2. 20.

그리하여 나는 알게 되었다.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 날을 개게 해 주시고 바람을 잠자게 해 주시며 결국 이 모든 하늘과 땅, 우주 만물을 지어 주셨음을, 나 공지영이 아니라 당신이 지으신 '모든 나'를 위해서 ...

나는 하느님이 왜 천지를 창조하시고 동물까지도 창조하시고 당신 스스로 "하느님 보기에 참 좋으셨다" 해 놓고 이 골칫덩어리 인간을 만들었는지, 어렴풋하게 알 것 같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왜 아이를 낳고 싶었는지 알게 되었듯,
그렇게 알 것 같았다. 하느님은 아름다운 창조물을 그리운 것들과 나누고 싶었나 보다. 좋은 걸 보면 생각나는 게 사랑이니까. 그래서 그들에게 자신을 만든 신을 거부해도 좋을 무서운 자유, 그 신성神性의 일부까지 부여하셨나 보다. 사랑은 스스로 찾아오는 것이니까. 그래서 하느님은 나를 기다려 주신 것이다. 18년 동안 물끄러미 바라만 보면서, 당신이 가진 전지전능의 능력을 오직 기다리는 데 사용하신 것이다. 뭐하러 사람을 지으셨냐고 하느님을 원망하고 나 자신을 미워하며 오래도록 헤매어 다니던 한 사춘기 소녀의 영혼에게 하느님은 이제야 대답을 주신다. 이렇게 오래도록 헤매어 다닌 후에야.

문든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팔레스타인에서 죽어 가는 사람들, 아프리카에서 굶어 죽어 가는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던 그에게 하느님은 응답을 주셨다고 했다.

얘야, 내가 그래서 너를 만든 거란다.

이제 마흔이 다 된 이 늙은 소녀는 먼 길을 돌고 돌아 중얼거리며 집으로 돌아간다.
"하느님, 저를 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 수도원 기행 1, 공지영, p315~316